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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美‘, ‘여성과 문화'와 관련한 본연의 생각을 나눕니다.

남성의 붓으로 그려진 당대의 여인들

저자
소현숙
등록일
2020.10.07
조회수
1,474

남성의 붓으로 그려진 당대의 여인들 복잡하게 뒤엉킨 남성과 여성의 욕망 이 글은 <남성의 붓 아래 놓인 당대 여성 – 재현 양상 및 생산과 소비 측면에서 본 당대 사녀화> (소현숙, 2020)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해당 논문은 아모레퍼시픽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사녀화란? 귀부인, 시녀, 궁녀, 무녀 등 아름다운 여성을 묘사한 그림을 통칭합니다. 7세기경 무덤 속 벽화나 관곽 등에서 출현한 사녀화는  8세기경 고분 이외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녀화에 드러나는 당대 여성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 무덤 속 ‘여성공간’과 사녀화 南主外, 女主內 “남성은 바깥을 주관하고 여성은 안쪽을 주관한다 복잡한 무덤 공간은 크게 안과 밖으로 나뉘는데 바깥에는 예의와 수렵 활동 등을 담당하는 남성이 묘사되어 있으며 내부 공간에는 시녀와 무악 여성 등을 배치하고, 무덤의 가장 안쪽 공간인 묘실에는 궁중 여성과 내시, 기악과 무녀, 사녀화 병풍 등을 묘사했습니다. 현종 이전에는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활발했음에도 무덤 속에서 이 같은 현상이 보이는 것은 당대의 사회가 여전히 유교적 이데올로기에 강하게 속박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 부덕을 갖춘 요조숙녀로 재현된 여성 이미지 8세기에 이르러 그림 속 여인들은 시녀나 궁인에서 우아한 귀부인의 모습들로 변화했습니다. 악기를 들고 스스로 연주를 하거나 악무를 감상하기도 하며, 머리를 손질하기도 하는 오락을 즐기는 소비적인 여성의 모습입니다. 이후 귀부인 옆에 아이들이 출현하는 ‘자녀화’는 길상과 태평성대를 뜻하는데,  이는 여성의 모성과 부덕을 강조한 것입니다. <흥교사 돌확 도련도> 모본 노동하는 여성을 그린 사녀화도 출현했는데, 전통적 여성 노동인 방아 찧고 실을 잣고 베를 만드는 과정을 묘사한 搗練圖(도련도)가 대표적입니다. ‘도련’은 예부터 ‘여성의 德(덕)’을 찬양하는 매우 유교적인 주제였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들은 내밀한 사적 공간에서 전통적인 여성 노동에 참여하거나, 아이들과 함께 출현하여 화목한 가정의 공헌자로서 부덕을 강조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림에서만 재현된 여성 이미지가 아니며, 당대 남성 문학 속에서도 여성들은 아름답고 총명했지만 남성의 도움을 통해 억압된 지위를 벗어날 수 있는 피동적 존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 남성들의 붓으로 그려진 사녀화 사녀화의 제작자는 대부분 남성으로 여성의 사회적 성 역할은 문장과 악무에 한정되어 있는데 당시 궁중과 민간에서 행해진 여성 교육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궁인들은 유교와 도가 경전, 역서, 문학, 서예, 바둑이나 악무를 배웠다고 합니다. 여염집 소녀들도 주로 부덕을 강조하는 바느질, 화장, 악무 등을 익혔고, 가정이나 궁중의 여성 교육에서 그림은 없었습니다. <무녀도>, (<사녀무악도> 병풍의 일부) ** 주문자와 감상자는 士人(사인)과 妓女(기녀) *士人(사인: 학식이 있되 벼슬을 하지 않은 선비) 사녀화는 이동이 용이한 두루마리나 실내 공간을 나누는 병풍의 형식으로  제작되었으며, 이는 야유와 연희 문화의 발전과 관련이 있습니다. 당대 중기 이후, 진사 및 과거 수험생들이 몰리는 지역에 등장한 기루(妓樓:기생을 두고 영업하는 집) 는 기녀와 사인의 교류 공간이었습니다. <악무 여성도> 이 내실에는 병풍과 족자그림(장병)이 다수 배치되었는데, 사인들은 사녀화의 주요한 향유자들로 그림을 품평하고 그 소회를 글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기녀들의 초상화 제작이 보편적이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남성 사인들의 이와 같은 욕망은 기녀들에게 투사되어 그녀들의 미인도 초상 제작을 부추겼을 것입니다.   기녀들은 사녀화의 주요 향유자임과 동시에 주문자이며 모델로 당대 사녀화 속에는 그녀들의 욕망이 투영되었음이 확실합니다. 즉, 사녀화에는 남성과 여성의 욕망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을 것입니다. ** 사녀화의 또 다른 소비 방식 敎化(교화)와 鑑戒(감계) *鑑戒(감계: 지난 잘못을 거울로 삼아 같은 잘못을 않으려는 다짐) *敎化(교화: 가르치고 이끌어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 “그림이란 교화를 이루고, 인륜을 돕는 것이다(夫畵者, 成敎化, 助人倫).” 장언원(당나라의 서화론가) 당대인들은 사녀화에서 ‘교화’, 혹은 ‘감계’라는 전통적 관념을 벗겨내지 않았습니다. 당대의 사인들은 여성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는 마음과 여성을 향한 남성의 욕망을 강하게 드러낸 전기소설을 다수 창작했는데, 이는 ‘풍류를 논하고자 한 것이 아니며 좋은 것을 권하고 나쁜 것을 경계하기 위해 썼다’ 라고 합니다.  그림도 문학과 별반 다르지 않는데, 공적인 공간에 놓인 사녀화는 그것을 보는 감상자에게 교화와 감계를 목적으로 했을 것입니다. 이를 대표하는 것이 열녀도이며, 당대 묘실 속 사녀화 병풍, 역참에 그려진 양귀비 그림 등은 전통적인 유교적 이데올로기를 관철하는 도구였습니다. 설령, 감상자가 여성의 아름다움만 주목했더라도 말입니다. 중국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여성의 제약이 완화되고 성적으로 개방된 당대였지만 사녀화 속의 여성 이미지는 여전히 ‘부덕을 갖춘 요조숙녀’였습니다. 비록 사녀화의 주문자와 주요 소비층 가운데 하나가 기녀, 즉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여성을 소비하는 남성, 즉 사인들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가 강하게 반영되었습니다. 게다가 그 위에는 여전히 ‘감계와 교화’라는 전통적 회화 이념이 두껍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목소리와 자각을 드러내는 사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후대의 회화사에서는 사라져 버렸지만 얼굴을 가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 위에 올라 도로를 활보하는 기마 여성의 이미지는 세간의 뜨거운 이야기 거리였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여성 협객들처럼 어느 시대나 예외는 있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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