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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 한국어와문학분쟁과 건설에 대한 한 여성 포토저널리스트의 시선 - 호마이 비야라왈라의 분단-국민국가 건설 시기 사진 재현의 의미

학술지명
코기토
저자
이광수
연도
2023
발행기관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호마이 비야라왈라는 1942년이 되면서 처음 사진을 배우고 찍은 뭄바이를 떠나 델리에서 영국정보국(British Information Service)의 사진기자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 인도는 200년 가까운 식민 지배가 끝나는 무렵 한편으로는 네루를 위시한 민족지도자들이 영제국으로부터 정권을 이양받아 새로운 국민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시기였고 이와 동시에 인도 대륙 곳곳 특히 서북부와 동북부에서 힌두와 무슬림 간의 충돌로 인해 준(準)내전 상태에 놓인 시기였다. 1947년 네루가 초대 수상이 된 후 인도는 국민국가 건설에 박차를 가했다. 분쟁과 국가 건설이라는 두 개의 선택 지점에서 사진가 호마이는 국민국가 건설의 주제를 선택하였다. 그는 네루가 이끌고 간 국민국가 건설을 꿈과 희망의 사진으로 재현하였다. 보도 사진이라는 것 또한 순수한 팩트의 실체가 아니고 문화에 따라 재현된 이미지다. 그러면서 대중화된 이미지들을 통해 사진의 리얼리즘은 객관적 사실이 아닌 어떤 시각을 재생산하는 서사가 된다. 그 위에서 구축된 어떤 이미지를 이용해 정치인은 권력을 발휘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것이 사진가 호마이와 정치인 네루 사이에서 구축된 네루의 꿈의 재현의 의미다. 호마이의 사진으로 하는 역사 기록은 네루 시대가 끝나고 얼마 있지 않아 중단되었다. 네루의 꿈인 다양성이 공존한 하나의 국민국가, 국민이 존중받는 사회주의적 사회로서의 국민국가가 실현되지 못한 채 네루가 죽었고, 이어 도래하는 인디라 간디의 권위주의적이고, 갈등을 유발하는 국가 운영에 불만을 품어 그 역사를 주체적으로 기록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결국, 포토저널리스트 호마이 비야라왈라가 만든 이미지는 정치인의 실제 모습을 기록한 것이지만, 세계를 자기의 시각으로 해석하여 정치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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