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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美‘, ‘여성과 문화'와 관련한 본연의 생각을 나눕니다.

다섯번째, 모성의 멸균 능력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남성 간 경쟁 질서를 은폐하는 '여성혐오'

저자
박찬효
등록일
2020.07.03
조회수
1,224

제5부 모성의 멸균 능력을 요구하는 신자유주의,  남성 간 경쟁 질서를 은폐하는 ‘여성혐오’ ‘개저씨‘, ‘맘충’ 등 특정 집단을 지정하여 비하하는 말들이 생겨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특정 집단의 모든 개인이 특정 성격을 지녔다는 일반적 공식을 만들어내고 있는 미디어의 무서운 힘 때문입니다. 미디어 속 인간의 삶은 실제 우리 삶과는 명백히 다릅니다. 그러나 미디어가 한 집단에 특정 이미지를 반복하여 보여주다 보면 현실에 실제하는 그 집단 속 사람들이 사실은 제각각 다른 인격체라는 걸 잊게 됩니다. 우리는 한 개인/집단에 대해 다양한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단정지어 버리는 태도를 좀 더 고민해 봐야합니다. *성찰하는 아버지와 여전히 계도되는 모성 최근 가족 판타지를 제대로 보여준 드라마가 있으니, 바로 〈SKY캐슬〉(2018. 11. 23~2019. 2. 1, JTBC)입니다. 드라마는 표면상 ‘입시’ 스릴러로 보이지만 ‘가부장제’ 스릴러로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차민혁과 강준상을 통해 오늘날 ‘아버지 중심 가부장제가 폐기되는 지점’을, 한서진을 통해 불가침 영역에 있던 ‘모성이 혐오적으로 전이되는 지점’을 동시에 그렸기 때문입니다. 이 드라마는 한국 가족제도를 지탱한 희생적 모성과 잘못된 자식 사랑을 전면 비판 합니다. 이기적인 한서진의 모습은 그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현재 한국사회의 커다란 화두로 볼 수 있는데 이는 그녀의 치맛바람이 그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요구되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이후로, ‘치맛바람’은 사회활동을 하는 기혼 여성을 부정적 대상으로 수식했던 것에서 주로 자기 자녀의 성적에 매달리는 어머니를 이기적 대상으로 의미하는 것으로 전이되었습니다(본 도서 제2, 3부 참고). 20세기 미디어에서는 자녀 교육을 어머니 역할로 강조하면서 사회는 주부에게 자녀교육 임무를 떠넘겼지만 입시 문제로 치맛바람을 날리는 어머니의 이기적인 모습은 빈번하게 기사화하면서 자녀를 망가뜨리는 존재로 비판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모성은 언제나 국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모성의 역할은 더욱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한 인간의 사회적 생존 자체가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지금, 사회는 어머니에게 자녀의 미래에 해가 되는 것을 ‘멸균’하는 능력까지 은근히 바라고 있는데 이 ‘멸균 능력을 지닌 모성’ 은 20세기 후반처럼 가족을 따뜻하게 보살피는 ‘돌봄’의 성격과는 매우 다릅니다.  소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김숨, 현대문학, 2013)에서 어머니로 나오는 그녀의 자녀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렇다는 것 말고는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는 ‘아토피’로 고생한다. 이 소설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아토피는 신자유주의 질서 안에서 생존의 공포를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어머니는 균으로 가득한 신자유주의 시대 속에서, 자신의 자녀에게 안전하게 계층 상승을 할 수 있는, ‘멸균 공간’ 을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 그녀가 아이의 몸에 연고나 로션을 발라줄 때 반드시 끼는 일회용 비닐 위생장갑은 자녀에게 ‘멸균된 공간’을 제공하려는 모성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는 “비닐 위생장갑을 껴야 안심하고 아이의 몸을 만질 수 있는 현실”이 억울하면서도, “자신의 손에 묻은 세균이 [아이의 몸에 난] 종기로 침투할까봐 염려스러워”(192쪽) 비닐 위생장갑을 꼭 사용한다.  그녀는 사실상 자신의 아이가 다른 아이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자신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드는 약값을 아껴 아이에게 피아노 개인 레슨을 시키고 싶어 한다. (165쪽). ‘자녀의 앞날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는 모성’은 타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모성 자체를 도구화한다는 점에서 혐오스러운 속성이 내재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는 부부가 평등한 가족상이 확립되어간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자녀와 잘 놀아주려 하고 가정일도 되도록 아내와 같이 하는 ‘부드러운 아버지’ 중심의 가부장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미 미디어에서는 과거를 성찰하면서 여전히 물질적·정신적으로 가정에 버팀목이 되는 아버지, 그리고 여전히 계몽의 대상인 어머니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SKY캐슬〉입니다. *여성혐오,  남성 간 경쟁 질서를 은폐 상황에 따라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성 역할과 이미지는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전에도 남성 간에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졌지만, 미디어는 그 경쟁의 비윤리성을 내세우거나, 남편의 유약성과 유아성을 강조하면서 힘든 아버지의 안위를 항상 보듬었기(본 콘텐츠 제2, 3부 참고)에 지금처럼 분노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여성은 어머니 지위에 만족하게 하여 여성은 남성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없었고 가부장 질서를 위반하는 여성은 쉽게 ‘혐녀’로 만들어버려 아버지의 권위를 유지(본 콘텐츠 제2, 3, 4부 참고)시켰습니다. 이후 신자유주의가 가속화되고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출생률까지 심각하게 낮아지자 성별분업 체제 유지가 어려워졌습니다. 이에 따라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남성을 무조건 사회활동의 장으로 포섭하기 보다는 필요한 능력을 가진 여성이 전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젊은 남성이 경쟁에서 진 상대는 여성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현재 20대 남성 상당수가 갖는 반(反)페미니즘 정서는 과거와 달리 여성이 남성의 경쟁 상대로 부상한 것과 연관이 있다고 분석됩니다. “25~29세는 노년기를 제외하고 여성이 유일하게 남성보다 고용률이 앞서는 시기(여성 69.6% 남성 67.9%, 2017년 기준)”다. 한국은 성별 임금격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가장 크지만 20대 후반은 그 격차가 그나마 좁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군대를 다녀온 학점 3.5점의 남 자와 학점 4.0의 여자 가운데 취업이 더 잘되는 것은 남자이며 일단 찐따구간(군 복무를 마치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기)을 벗어나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 남자는 우월한 지위에 놓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여성들의 미러링이나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그나마 ‘반응’을 하는 것은 20대 남성이고 오히려 이미 우월한 지위를 누리고 있는 남자 기성세대 집단은 입을 닫고 있다” “20대 남성의 불만이 젠더갈등으로 터져 나오는 양상에 대해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발행인은 ‘부와 학력자본이 세습되며 양극화가 심해지는 과정에서 지역갈등처럼 젠더갈등으로 을과 을이 싸우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면서 ‘젊은 세대 내부의 젠더갈등 덕에(불평등한 사회를 만든 데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할) 기성세대는 편해졌고 386세대는 역시 팔짱 끼고 바라보는 상황에 가깝다’ 고 말했다.” -〈(‘ 20대 남성들은 문재인 정권에 왜 화가 났을까’…13명 심층 인터뷰) “미래 ‘불안감’ 울고 싶은데… ‘젠더 이슈’에 화풀이”〉, 《경향신문》, 2019. 1. 19, 11면.반면 여학생들에게 취업난은 갑작스럽기보다는 1980년대 부터 일상적이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취업난 겪는 女大生들 〈인간시대〉 MBC 밤 8·05〉  -〈高學歷 여성 失業 한 해 3만 명 배출─大卒 취업률 25%… 대기업은 5.8% 불과, 면접 등서 불이익 여전… 수요 많은 理工系로 눈 돌려야〉《매일경제》, 1990. 11. 15, 21면. -〈(NEWS & VIEW) ‘알파걸’ 취업률 해마다 내리막…기업 여성차별 탓? 여성 근성부족 탓?, 그 많던 알파걸은 어디로 갔을까?〉, 《조선일보》, 2009. 4. 11, A1면 미디어에서 중산층 전업주부가 남편에 기생하는 존재로 형상화되는 것도 취업 스트레스에 놓인 젊은 남성들의 분노를 유발하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성별분업이 확고했던 시대에는 매우 의미있고 중요하게 여겨지던 가사노동(본 콘텐츠 제2부 참고)이 폄훼되어 결국 ‘맘충’이 등장한 2010년대에는 미디어가 전업주부의 존재성을 평가절하함으로써 남성과 여성 간, 세대와 세대 간, 계층과 계층 간 갈등이 여성 혐오로 분출되었습니다.  1990년 대 미디어에서 ‘고학력 여성’이 ‘능력 있는 전업주부 미시’로 포섭되었듯(본 콘텐츠 제3부 참고), 2010년대 전문직 기혼 여성은 ‘능력 있는 워킹맘’으로 포섭되고 있습니다. 2010년대 후반 이후는 여성 간 능력 경쟁, 윤리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여여 갈등’의 문제가 커지게 될 것입니다. 여여 갈등으로 인해 여성 간 연대가 힘들어짐에 따라 성불평등을 해결해나가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상당수 페미니스트가 본인이 생각지도 못하는 사이, 이미 그 존재성만으로 21세기에 새로 주조되는 가족이데올로기에 포섭된 여성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책은 표면상 한국 가족이데올로기의 변모 양상을 추적하고 있지만, 결국 말하고자 한 것은 가족에게 요구된 ‘욕망’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전후부터 지금까지 사회적 상황에 따라 가족이데올로기는 달라지고 아버지, 어머니, 여대생, 내연녀, 취업주부, 전업주부, 이혼녀 등의 위치는 물론 혐오의 대상도 그 상황에 따라 배치·재배치됩니다. 그에 따라 우리 모두가 ‘특정 역할’을 요구 받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개인이 태어나고 가족을 만들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당연한 삶이 어려워진 시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고단함을 성대결로 풀어나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으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원한다면, 이제는 ‘다른’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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