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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美‘, ‘여성과 문화'와 관련한 본연의 생각을 나눕니다.

메이퀸, 역사 속에 잠들다

저자
임유경
등록일
2020.08.12
조회수
1,158

메이퀸, 역사 속에 잠들다 5월의 여왕, 메이퀸을 들어 보셨나요? 한때 대학 축제 문화 하이라이트로서 “대학가의 선망”으로 떠올랐을 뿐 아니라 당시 미디어에서도 크게 주목했던 메이퀸. 그랬던 메이퀸이 자취를 감추게 되는 변화 과정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태동하기 시작한 여성운동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메이퀸과 대학문화 ‘메이퀸’이 한국에 처음 등장한 건 1908년 이화학당에서였습니다. 창립자나 교사 등과 같이 학교 발전에 공을 세운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메이퀸 선발은 약70여 년간 유지한 전통이자 이화인의 상징이었습니다. 1950년대 후반, 한국대학들이 제각각의 축제문화를 만들면서 메이퀸 행사도 유행처럼 퍼졌고 많은 대학에서 ‘5월의 여왕’은 “젊음과 낭만의 상징”으로 부상하면서 1960년대에는 ‘축제의 절정’, ‘클라이맥스’로 불렸습니다. 이 시기 ‘미인’, 즉 ‘메이퀸’의 정의를 세분화된 기준과 수치로 구성하면서 메이퀸 행사는 ‘대학의 미인대회’로 불릴 수 있을 만큼 보통 미인대회와 유사해졌습니다. 또한 메이퀸 관련 이슈가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만들어지면서 메이퀸은 현대 여성의 지성과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표본으로 자리매김합니다. *메이퀸 논쟁과 여성운동 메이퀸 제도는 민주사회의 인권 모독이며 여성의 비인간화이고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잔해였습니다. 당시 메이퀸 논쟁은 변화하는 대학가 세태를 반영하였고 한국사회에서 활발하게 벌어지기 시작한 여성운동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1975년 ‘세계 여성의 해’가 만든 대표적 유행어 “여성은 이제 커피를 만들지 않고 정책을 만든다”라는 표어는 한국사회에도 상륙했던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1975년 2월 20일 YWCA 주최로 열린 “미인대회는 필요한가”라는 주제의 좌담회가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곧바로 대학 축제문화에도 나타나 ‘메이퀸 행사’가 더 이상 “잠자는 여성사회를 깨우쳤던 선구자적 개척 정신의 계승”을 담보할 수 없으며 오히려 “성의 제전”으로 밖에 표현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메이퀸 폐지론’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됩니다. 1978년 이러한 경향이 더 깊어졌고 결국 이화여대에서는 메이퀸 선발을 위한 과 퀸 선발 과정 중 반 이상의 학과가 선출 반대의사를 표명하면서 메이퀸은 역사 속에 잠들게 됩니다. *메이퀸에 대한 미디어의 태도 이화여대에서 메이퀸 논쟁이 불거졌을 때, 미디어가 보여준 관행화된 보도행태는 당시 한국사회에서 ‘메이퀸 제도’나 ‘이화여대’라는 특정 대상만이 아니라 ‘여대생’, 나아가 ‘젊은 여성 일반’을 어떤 방식으로 재현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중 일명 ‘메이퀸 살해사건’은 이러한 양상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메이퀸 살해사건: 1971년 7월 메이퀸 출신 여대생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청혼을 거부하다 투신자살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조사 결과 타살로 밝혀졌고, 법리 공방이 2년간 지속된 끝에 유죄 판결되면서 종결된다. 미디어는 이 사건을 보도한 3년간 사망 여성을 ‘메이퀸’으로 호명하면서 선정성을 부각시키고 이 사건을 ‘가십’처럼 취급했다. “투신자살했다던 메이퀸, 필경 살해를 자백. 병(病)은 미모(美貌)요, 환(患)은 영예(榮譽), 그럴 줄 알았더라면 만화(萬花)중 호박꽃이라도 됐던들.” <장침단침>, 《동아일보》1971.7.7.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원인은 ‘아름다운 용모’라고 말한 이 기사는 비극적인 사건을 한없이 가볍고 우스꽝스럽게 만들어 그녀의 죽음에 또 한 번 훼손을 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메이퀸 제도가 폐지될 무렵, 대표적인 미인선발대회 ‘미스코리아’행사가 이전보다 더 활발해지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이는 텔레비전 보급 그리고 현장 생중계가 가능한 기술 발달이 미인대회의 대중적 인기와 사회적 파급력을 강화시키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우리의 상징이 더 이상 바람직한 이상을 제시하지 못하고, 우리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할 때, 그 상징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메이퀸, 그 존재 의의는 이미 사라졌는가>《이대학보》 589, 이화여자대학교, 1977. 5.27,6쪽) 지나간 ‘메이퀸 시대’를 역사에서 영예롭게 반추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건 자기의 전통을 신화화하지 않고 현재 속으로 끌어내린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주체적 인식을 더 깊이 있게 구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즉 여성운동이 단순히 사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를 논하는 것이 아닌 여성의 시각으로 역사, 정치, 사회를 재구성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메이퀸 논쟁’은 기존에 보이지 않았던, 더 정확하게는 볼 수 없었던 시선을 창출하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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