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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美‘, ‘여성과 문화'와 관련한 본연의 생각을 나눕니다.

시집살이담에서 길어올린 우리 문학 이야기

저자
이혜진
등록일
2020.08.12
조회수
1,097

시집살이담에서 길어 올린 우리 문학 이야기 *우리에게 신화, 전설 못지않게 생애담 혹은 경험담이 중요한 건 설화가 사라져 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면서 구비문학의 맥을 잇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전통적인 삶을 살았던 어머니라면 생의 희로애락이 짙게 배어있는 시집생활 경험담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부장제하에서 여성들에게 보편적이고도 전형적인 삶이었던 ‘시집살이’는 개인의 삶을 넘어서서 우리 생활사 전반에 걸친 소중한 문학적, 사회적 유산이 되었습니다. <표.>4[구연정보] 구연자 : 박OO(여・1932년생) 화자의 모친은 화자가 명이 짧다는 점괘를 믿어 화자를 재취자리로 시집을 보냈다. 화자가 신행 온 날 떡국 상 앞에서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어린 여자 아이 셋이었다. 거기다 시집을 와 보니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살림이 엉망이었다. 시어머니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살림이라고는 살 줄 모르는 양반집 여인네였다. 시아버지는 술주정 으로 밤마다 집안을 뒤집고, 남편은 읍내에 나가서 기생들과 어울렸다. 남편의 전처도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집을 나갔다고 했다. 특히 시아버지는 술주정이 매우 심해 온갖 수모를 다 겪었다. 거기다 또 힘든 것은 세 딸을 두고 나간 전처가 일 년이면 두세 번 찾아와서 객처럼 묵었다 가는 일이었다. 남편과 정식 이혼도 나중에 겨우 했다. 하지만 전처가 두고 간 딸 셋에게는 미운 마음이 전혀 안 들고 정이 갔다. 남편과 사이에 3남 2녀를 두었는데 형제간에 서로 다투지도 않고 착실하게 자랐다. 나중에는 친정에 문제가 생겨 친정어머니를 15년간 모시며 살았다. 부산의 시동생에게 가 있던 시아버지가 술을 먹고 쓰러져 하반신이 마비가 되어 다시 모시게 되었다.  3년간 대소변 수발을 받았는데, 그 와중에서도 술을 계속 드셨다. 그래도 주정을 하지 않 으니 똥을 치우는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시아버지 병수발을 한 번도 하지 않고 도도히 지내다가 아흔에 돌아가셨다. 남편은 아흔 셋으로 사망했는데, 며느리나 딸에게 병수발을 시키지 않고 자신이 했다. 아들 셋이 가까이 살며 도와주고, 손자들도 모두 잘 돼 서 평온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 전처 소생의 딸들이 구연자 박씨의 일생을 내내 짓눌렀습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일들을 겪으면서도 그녀는 의연하게 살아왔고, 자식들을 훌륭하게 성장시켰습니다. 박씨는 여장부라 할 만한 며느리이자 아내이자 어머니였습니다. 가히 한국 근대적 가족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극한적인 시집살이를 포괄적으로 드러내는 사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표.5>[구연정보] 구연자 : 이OO(여・1935년생) 화자는 중학교까지 졸업하고 보건소에 취직하여 직장생활을 하던 중, 부친의 중매로 가기 싫은 곳으로 시집을 갔다. 그녀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병수발에 힘든 나날을 보낸 후, 무능한 남편을 대신해 생활을 책임지느라 그릇장사에서부터 일수놀이까지 온갖 일을 했다. 심지어 땔나무조차 남편이 마련하지 않아 자신이 근처 탄광에서 얻어 왔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자신을 도와주기는커녕 바깥일을 하는 자신을 못마땅히 여겨 구타를 일삼았다. 남편이 사망한 후에는 알코올중독에 걸린 큰아들과 위암으로 먼저 사망한 둘째아들 탓에 고생했고, 지금은 요양병원에 있는 큰아들을 대신해 고등학생인 손녀딸을 어렵게 키우며 살고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한숨이 쌓여 산꼭대기가 되고 눈물이 모여 한강수가 됐을 인생”으로 표현했다. -이씨가 구연한 이야기야 말로 가히 시집살이담의 종합판이라 할 만한 사연들을 담고 있습니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인생은 ‘걸어도 걸어도 암흑이고, 걸어도 걸어도 절벽’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손녀딸을 맡아 키우며 여전히 시집살이 중인 이씨의 목소리에는 응어리진 슬픔과 한이 서려있었습니다. <표.6>[구연정보] 구연자 : 김OO(여・1929년생) 화자의 부친은 홀로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돌아온 후 자신을 독가촌이 있는 깊은 산골로 시집을 보냈다. 화자가 어렸을 때 부모가 자신을 다른 집에 버렸으나 자기 혼자 다시 집을 찾아 간 적이 있을 정도로 당차고 영리했다. 깊은 산골 독가촌으로 시집을 간 화자는 어려운 결혼 생활을 경험했다. 극도로 식사량이 적었던 자신을 먹이기 위해 시어머니가 노력했고, 화자의 결혼 생활 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베짜기의 연속이었다. 워낙 잘 먹지 않고 일만하는 체질이라 바깥 출입도 잘 하지 않고 하루종일 베만 짰다. 전쟁 와중에는 피난 중에 딸을 출산하기도 했는데, 그 딸이 나중에 펜팔로 사귄 남자와 결혼했다. 호랑이 같던 시아버지 탓에 하루하루가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그런 시아버지에게서 담배를 배워 지금까지 피우고 있다. 화자는 그 당시 유행했던 파마가 너무나 하고 싶어서 했다가 예상치 못한 시아버지의 엄청난 구박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자살까지 시도하기도 할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 를 받았다. 또 시아버지의 둘째 부인인 작은 시어머니의 아들을 찾아 주었다가 또 한 번 시아버지의 구박을 받기도 했다. 농사일에 포도과수원일 심지어 봇짐장사까지 열심히 했지만 평생 시아버지 시집살이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시부모님 살아생전에 더 잘해드리지 못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화자는 결혼 초기에 아들을 못 낳는다고 시어 른들로부터 구박을 받았다. 가자미로는 국을 끓여 먹지 않고 회를 해 먹었다가 꾸중을 받기도 했다. 속이 아파 시아버지의 권유로 피기 시작했던 담배였는데 결국 담배 장사 도 하게 되었고 현재까지 담배를 즐기고 있다. -대표적인 시아버지 시집살이담을 구연한 김씨는 순전히 시아버지의 깐깐한 성격 탓에 고난의 시집살이를 살았고, 특정 사건이나 본인의 태도 탓에 그 강도가 심화되는 일을 겪기도 했습니다. 반면 이야기 내용과는 별도로 김씨는 구연 솜씨가 아주 특별한 분으로 듣는 청중을 몰입시키는 일급의 이야기꾼이었습니다. 덧붙여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발음과 발성도 매우 좋아 여러모로 청중의 집중도를 높였습니다. 또한 장시간(약 8시간)의 구연에도 김씨가 지치지 않고 이야기를 쏟아냈던 건 두 분의 할머니가 청중으로 탁월한 역할을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표.7>[구연정보] 구연자 : 장OO(여・1942년생) 21살에 결혼한 화자는 시어머니 시집살이를 심하게 살았다. 시집이 비교적 부유했지만 며느리를 차갑게 대한 시어머니 탓에 항상 배를 곯았다고 한다. 농협에 오랫동안 근무한 남편은 이런 사정을 몰랐고, 4번이나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시아버지가 많이 도움을 주었지만 시아버지의 도움을 오해한 시어머니 탓에 또 힘든 생활을 하기도 했다. 이후 시아버지 병수발을 12년 간 했다. 시어머니가 화자를 의심하여 집안일이나 농사일에 힘든 점이 너무 많았다. 시아버지 병수발에 자식들이 많은 도움을 준게 그나마 화자를 덜 힘들게 했다. 시어머니 는 시아버지가 병든 후 화자의 남편인 큰아들 곁에 있지 않고 서울에 사는 막내아들 옆에 방을 얻어 근 10년을 혼자 살기도 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큰며느리 곁으로 돌아왔다. 부모 병수발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시동생을 뒷바라지 하여 세 명이나 교직에 진출하도록 했다. 가수 공연을 보러 갔다가 화자가 늦게 들어오는 바람에 남편이 문을 열어 주지 않거나, 집안에 불화가 생기면 엽총으로 자살 소동을 벌였던 남편도 화자를 힘들게 했다. -장씨의 경우 시어머니 시집살이의 이유가 특이한 경우로, 며느리를 측은해 한 시아버지의 관심을 오해하여 시어머니가 혹독한 시집살이를 시킨 사례입니다. 여기에 자신의 행동이나 특정 사건과 관련된 남편 시집살이까지 살아온 면모도 엿보입니다. 그런데 고부간의 일들을 남편이 오랫동안 전혀 몰랐었고, 최근에서야 지인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바로 이 상황이 며느리였던 장씨를 더욱 힘들게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남편의 태도와 입장에 따라 아내의 시집살이가 상대적으로 수월해 진다는 점을 엿볼 수 있습니다.‘시부모 시집살이는 누워서 하고, 남편 시집살이는 앉아서 하고, 자식 시집살이는 서서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동일한 조건이라도 그것이 시부모와 관련될 때보다는 남편이나 자식과 관련될 때 여성에게 정서적 충격과 박탈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훌륭하게 구연하는 구술연행은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훌륭한 언어예술입니다. 시집살이담과 같은 생애담의 구연 과정은 사실을 이야기로 엮는 문학적 과정으로서, 그를 통해 삶의 곡절 및 그에 얽힌 정서적 반응이 생생히 살아나게 됩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삶에 자신이 개입할 근거를 마련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문학이 존재하는 큰 이유중 하나입니다. 시집살이담은 반드시 이야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여성 스스로에 대한 담화로서 여성 화자 홀로 구연하는 개인사로만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이 이야기들 하나하나는 전부 한국 가족사의 중요한 경험담으로 청중들을 통해 전파되어 궁극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삶을 꾸려야 하는지를 살피게 하는 ‘우리 이야기’의 거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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