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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美‘, ‘여성과 문화'와 관련한 본연의 생각을 나눕니다.

조선 후기 여성들은 "이것"을 화장수와 화장크림으로 썼다고?

저자
김현정
등록일
2020.11.18
조회수
2,316

조선 후기 여성들은 “이것”을 화장수와 화장크림으로 썼다고? 이 글은 <조선시대 후기 화장수와 화장크림의 양상에 대한 고찰> (김현정, 2014)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해당 논문은 아모레퍼시픽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동동구리무’란? 개화기 무렵 유행했던 화장품 ‘동동구리무’는 크림의 일본식 발음 ‘구리무(クリーム)’와 상인들이 북을 메고 둥둥 치면서 팔았다고 해서 동동구리무라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는 크림화장품의 일종으로 필요한 만큼만 용기에 덜어서 사는 방식이었는데요. 지금의 기초화장품에 해당하는 화장수와 화장크림은 왜 일본의 발음으로 불렸고, 왜 방문 판매로 유통되었을까요? -조선후기의 화장수와 화장크림 오랜 옛날부터 피부에 무엇인가를 발라서 얼굴을 더 아름답게 하고 윤기 있게 하는 풍습은 존재했을 것입니다. 단군신화에서는 쑥과 마늘이 피부를 하얗게 하는 미용재료로 사용되었으며, 말갈 사람들은 미백수단으로 오줌으로 세수를 했다는 기록이 있죠. 한반도의 동북방에 거주했던 읍루 사람들은 겨울에 돼지기름을 발라 추위를 이겨내고 동상을 예방했다는 기록 또한 있는데 이를 통해 화장수와 화장크림의 오래된 기원을 엿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대부분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각각의 가정에서 직접 제조해서 썼다는 기록이 존재합니다. 당시는 대가족 제도라서 여자들의 일손이 많은 편이었고, 화장수 역시 만들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므로 여자들이 직접 제조해서 사용했던 것입니다. 재료는 주로 수세미나 오이, 박 등 각 계절에 구하기 쉬운 자연재료를 사용했는데, 대부분 식물 재료가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수세미나 오이 화장수는 현대에도 수제 화장품으로 만들어 사용되거나 판매되고 있을 정도로, 수분감이 많아 화장수로서의 기능이 뛰어나고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으며 만들기도 어렵지 않아서 오래전부터 사랑받아 왔던 재료입니다. -동의보감 속 화장크림  『동의보감』에 보면 외형편(外形篇)-‘면(面)’이란 장은 전부 얼굴에 관련된 처방들이 적혀 있습니다. 주로 얼굴에 생기는 부스럼, 얼굴이 붓는 증상, 얼굴에 관련된 각종 병을 다스리는 방법과 피부를 좋게 하는 방법 등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는데요. 지금의 로션으로 볼 수 있는 ‘미안수’, 지금의 화장크림으로 볼 수 있는 ‘면지’에 관련된 재료들이 적혀있기도 합니다. 『동의보감』에 보이는 미안수와 면지 관련 재료 장수(漿水)	좁쌀죽의 웃물. 피부를 희게 하여 살결이 비단결같이 되게 하고, 기미와 사마 귀를 없애준다. 백지(白芷)	구릿대의 뿌리. 기미와 흠집을 없애주고 얼굴을 윤택하게 해 주며, 면지(面脂)를 만들어 늘 써도 괜찮다. 율피(栗皮)	밤알 속껍질. 가루내어 꿀에 타서 얼굴에 바르면 피부를 팽팽하게 해주고, 노인의 얼굴 주름살도 펴지게 한다. 도화(桃花)	복숭아꽃. 안색을 좋게 하고 얼굴을 윤택하게 해 준다. 대저제(大猪蹄) 큰 돼지 족발. 노인의 얼굴이 광택이 돌게 한다. 돼지 발굽 1마리 1분을 먹는 법대로 손질하여 끓여 아교처럼 만들어 잠잘 무렵에 얼굴에 발랐다가 새벽에 장수(漿水. 좁쌀죽의 웃물)로 씻어버리면 얼굴의 피부가 팽팽 해진다.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부녀자들을 위해 엮은 여성생활백과에 해당하는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얼굴 피부 관리법으로 ‘면지법(面脂法)’이라고 하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면지법은 겨울에 얼굴 피부를 윤기 있게 지키는 방법으로, 그 내용을 보면 면약(크림)을 만드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기도 합니다. 『규합총서』에 소개된 면약 만드는 방법 겨울에 얼굴이 거칠고 터지는데 달걀 세 개를 술에 담가 김 새지 않게 두껍게 봉하여 네 이레 두었다가 얼굴에 바르면 트지 않을뿐더러 윤지고 옥 같아진다. 얼굴과 손이 터 피나거든 돼지발기름에 괴화(傀花)를 섞어 붙이면 낫는다. -당시 일본의 화장수와 화장크림은? 에도시대와 메이지시대의 일본 역시 화장수의 재료로 ‘오이, 토마토, 딸기, 수세미, 쥐참외’ 등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주위에서 손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재료를 이용해서 피부의 윤기와 트러블을 방지하였습니다. 다만 일본의 경우 에도시대부터 서민들에게도 화장 문화가 발달하였고, 메이지 시대로 넘어와 서구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며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대량생산과 유통을 시작한 것이죠. 1906년에는 레토(レート)화장품 회사가 처음으로 서양의 화장품에서 사용되는 것과 같이 우유성분을 화장품에 넣어서 판매했던 ‘유백화장수 레토(乳白化粧水 レート)’를 만들었고, 건성크림의 일종인 배니싱 크림(バニシング-クリーム)을 판매했습니다. 1910년에는 경쟁회사인 구라부 화장품 회사가 바디 크림인 ‘구라부 바디 크림(クラブ美身クリーム)’를 발매하는 등 다양한 종류의 크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죠. -개화기 이후 수입 화장품의 등장 우리나라는 개화기 이후에 서양이나 중국에서도 화장품이 수입되어서 들어오고, 특히 일본에서 화장수나 크림, 비누 등의 여러 회사의 제품이 수입되었습니다. 일본의 화장품 회사인 구라부(クラブ)와 레토(レート)는 광고를 통해 치열하게 경쟁했죠.  우리나라도 동아부인상회에서 만든 미백로션인 ‘연부액(軟膚液)’, 조선부인약방에서 판매한 ‘금강액’ 등 대량생산 된 화장품이 시장에 유통되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 자가 제조한 화장수나 로션보다는 그 효과 면에서 뛰어났던 것은 분명했고, 그로 인해 인기를 끌었죠.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기본적으로 여자들의 바깥출입을 엄하게 규제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부녀자들은 특별한 행사나 장례 등의 경우가 아니면 외출이 쉽지 않았으며 물건을 사러 바깥을 다니는 일도 어려운 실정이었죠. 개화기 초기까지도 이러한 분위기가 이어졌기 때문에 화장품과 화장도구들은 당시 주로 집집마다 다니며 물건을 파는 방물장수를 통해 구입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때문에 ‘동동구리무’가 당시 북을 치며 판매하는 상인이나 화장품을 상징해서 이르는 말이 된 것입니다. 지금처럼 연령과 피부 타입에 따라 자신에게 맞는 화장품을 선택할 수 없던 과거에도 여성들은 주위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해서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재료가 현재 화장품 재료로 활용되기도 하는 것처럼 그동안 여성들이 아름다움을 위해 행했던 그 수많은 시행착오의 집약체가 바로 여러분의 화장대 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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